“소요필름은 ᅠ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저희는 영화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영화는 돈이 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삶에 해로운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저희가 사랑하는 일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해나갈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왔습니다. 저희는 그 고민을 ‘지속 가능한 사랑’이라는 슬로건에 담아냅니다. 그리고 아마도, 사랑의 가장 큰 특징은 확산된다는 점일 겁니다.” - 소요필름 홈페이지 소개글 중에서
인생이 유한하기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영속성’을 꿈꾼다. 영생을 꿈꾸며 불로초를 찾아 헤맨 진시황처럼 말이다. 그런 갈망은 삶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계속 누리길 원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최소한 개인의 삶이 끝나기까지 지속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2022년 11월, 기후 위기와 자원순환에 대해 지역에서 목소리를 내고 활동을 이어가는 〈낯설여관〉과 영화를 계속 만들기 위해서 지구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소요필름〉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랑’이라는 익숙한 단어를 발판 삼아, ‘영화’와 ‘생계’라는 두 주제를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Q1. 〈소요필름〉이 탄생하기 전, 허성완이라는 사람이 영화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궁금합니다.
정말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어요. 기억에 남는 것은 초등∼중학교 어릴 때 MBC에서 하던 〈토요명화〉에요. 거기에서 〈터미네이터〉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해 줄 때 정말 손에 땀을 쥐면서 봤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 순간들이 계속 쌓였고 영화를 진짜 많이 좋아했고 정말 많이 봤어요.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쯤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한국 영화를 돈 주고 보면 바보 같은 짓이었어요. 외화보다 상대적으로 재미가 없다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다 같이 영화를 본다면 당연히 외화를 보는 것이었죠. 그때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어서 영화관에서 몇 시에 모이자고 약속하곤 했는데, 친구 한 명이 약속 시각에 늦어서 원래 보기로 했던 외화를 못 보고 한국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기대를 접고 들어갔는데 영화가 너무 재미있고 훌륭한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보기에도 뭔가 달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영화가 바로 ‘살인의 추억’이었어요. 그 뒤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그전에는 그냥 영화를 보는 것이 재밌었다면, 그때 이후로는 ‘한국에서 저런 영화가 나오다니 저 영화 진짜 대단하다. 저런 건 어떻게 만들지?’라고 생각하곤 했죠. 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과를 전공했지만, 결국 2006년에 영화관에서 봉준호 감독님의 〈괴물〉을 보고 ‘영화를 찍어야 하겠다, 저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라고 결심했습니다.
제 첫 영화는 2014년 여름에 찍었습니다. 그 영화를 공개 한 건 2년 뒤지만요. 졸업 전 휴학도 할 수 있는 대로 다 하고 늑장에 늑장을 부리다가, 졸업하면서 ‘이제 나 영화 할 거야’라고 말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사실 영화를 하겠다고 하면 부모님은 안 좋아하실 거잖아요. 그래서 ‘그럼 너 졸업하고 해라’ ‘알겠다, 졸업하고 하겠다’라고 부모님과 논의한 뒤 졸업하자마자 바로 첫 영화를 찍기 시작한 거죠. 그게 2014년 여름이에요.
Q. 비전공자임에도 영화 산업에 과감히 뛰어들 수 있었던 용기의 원천은 무엇이었나요?
그러게요. 사실 겁이 많은 사람인데 그냥 했던 것 같아요. 정말 그냥 했고. 일단 저는 영화 동아리에 소속이 되어 있었고,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 합심해서 시작했습니다. 영화를 찍으려면 촬영하시는 분들도 필요하고, 조명하시는 분도 필요하고, 배우분들도 필요하잖아요. 그런 인원은 구인·구직 하는 사이트를 통해서 한 분, 두 분 구하면서 시작했죠. 지금 돌아보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시작했구나 싶어요, 하다 보니까 저번에는 이렇게 했는데 이게 잘못됐던 거였구나, 이렇게 하면 안 됐었네 하면서 다음에 그걸 고치고 그다음에 또 고치고 하면서 지금까지 온 거죠. 정말 무작정 했습니다.
Q. 〈소요필름〉은 어떤 이야기를 담는 곳인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소요필름〉은 ‘짧지만 충분한 단편영화를 만들자’라는 모토를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다른 인원 없이 혼자 시작했어요. 단편영화로 일가를 이루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도 있었어요. 그런 목표를 세웠던 이유는 영화라는 장르 안에서 단편은 장편의 하위 개념이라는 인식 때문이었죠.
정말 거칠게 비교하자면, 소설은 장편과 단편을 가리지 않고 똑같은 소설이고, 똑같이 시장에서 팔리고, 장편소설을 쓰던 분들이 단편소설을 쓰기도 합니다. 이건 전혀 이상할 게 없잖아요. 그런데 영화에서의 단편은 학생들의 습작 내지는 좀 모자라는 작품. 이걸 만들고고 눈에 띄어서 빨리 장편으로 넘어가야 하는 어떤 늪지대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여기를 빨리 헤쳐나가지 못하면 영원히 갇히는 그런 거죠, 단편이.
지금의 단편영화는 OTT나 다양한 플랫폼에서 스트리밍도 되고, 〈전체관람가〉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인지도 있는 감독들이 단편도 만들면서 위상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소요필름〉을 시작한 2017년만 해도 넷플릭스가 시장에 막 들어오는 시기였어요. 단편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았고, 저는 한 편, 한 편에 제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보여줄 기회도 부족하고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도 정말 적은 거예요.
그래서 ‘내가 앞으로 단편을 계속 만들면서 이거를 바꿔볼 수 없을까. 내가 만약 나중에 장편영화로 입봉 하더라도 단편영화는 계속 찍어야지’라고 생각하며 제 나름대로 어떤 작업 방식을 세웠습니다. 저는 ‘헤밍웨이식 작업 방식’이라고 나름대로 정의를 내린 건데, 헤밍웨이는 단편으로 먼저 작품을 실험해본 다음에 괜찮다 싶으면 장편으로 발전시키는 작업을 했거든요. 저는 단편 하나하나를 완성도 있게 만들고 거기서 어떤 가능성을 본다면, 그 단편으로 장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앞에서 말한 대로 2017년에 처음 설립 사업자를 설립했는데, 해외에서 넷플릭스가 대세가 됐고 국내에 이제 막 들어오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영화 관람의 방식이 바뀔 것 같다는 예측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짧은 영화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 내가 꾸준히 단편을 만들면서 보여준다면, 언젠가는 시기가 맞물려서 퍼져 나가지 않을까. 사람들이 좀 알아주는 시기가 올 수 있지도 않을까’라며 나름대로 고민한 결과였습니다.
그런 시대가 오긴 왔죠. 하지만 짧은 영상이 소비되리라 추측했지만 이렇게까지 짧을 줄은 몰랐던 거죠. 틱톡 내지는 유튜브 쇼츠, 아니면 인스타 릴스처럼 영상이 너무 짧은 거예요. 그에 반해 제 영화는 호흡도 길고, 길이도 10∼30분으로 지금은 제 영화가 느린 영화가 된 거예요.
다시 질문으로 돌아오면, 소요필름이 처음 목표했던 것은 ‘짧지만 충분한 영화를 만든다’로 단편이지만 거기에 제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담아서, 사람들이 봤을 때 뭔가를 얻어갈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개성 있는 단편영화 제작사가 되겠다는 게 출발점이었습니다.
소요라는 이름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요. 하나는 《장자》내편莊子內篇의 소요유逍遙遊에서 따왔습니다. 그 의미는 하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뜻이거든요. 행동 자체가 목적이고 여기에서 내가 즐거움을 느끼면 족하다는 뜻이고, 다른 뜻은 소요 사태의 소요騷擾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즐기면서 만족하면서 만드는데, 사람들은 이거 보면 난리가 난다. 이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죠.
Q. 대표님의 필모그래피에 특별한 자극을 주었던 경험이나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말씀드렸던 것처럼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 같은 상업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영화들인데, 지금 제가 만들고 있는 영화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쩌다 방향이 바뀌게 되었나 생각해볼까요. 사실 제 첫 영화는 그냥 그 당시에 가졌던 생각을 풀어놓은 것입니다. 원래 준비하던 영화가 하나가 있었는데 그걸 못 찍었었기 때문이죠. 바로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세월호 사고가 벌어지고, 저는 아이들이 잘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표현한 영화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오늘 준비해서 내일 찍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준비하는 기간 동안에도 사건은 급박하게 진행됐고, 시간이 지날수록 저희 모두가 알게 된 거죠. 아이들이 돌아오기 힘들다는 것을요. 그러니까 그 영화를 만드는 것이 정말 무의미한 일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촬영을 며칠 앞두고 기획을 엎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미 팀은 다 꾸려져 있었죠. 촬영팀과 배우들도 준비된 상태에서 ‘그럼 내가 이 팀과 배우들을 그대로 가지고 다른 걸 찍어보겠다’라고 생각했고, 그 당시에 제가 갖고 있던 생각을 표현할 수 밖에 없었죠. 왜냐하면 새로운 걸 쓰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내게 주어진 제약이자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뭔가 하나를 찍어보자고 해서 제 첫 영화가 나왔어요. 그 당시는 사랑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사랑에 관련된 영화가 나온 거죠.
그리고 두 번째 영화가 세월호에 관한 영화인데, 세월호 이야기를 준비하다 그걸 포기한 것에 대해 스스로 죄책감 내지는 미안함 같은 게 있었어요. 그걸 끝까지 완수하지 못하고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버렸다는 것에 대해서요. 그래서 두 번째 영화는 온전히 그 이야기를 해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때가 2016년 1월이거든요? 이미 사건으로부터 2년이 지난 후였고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우리는 이런 참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라는 주제였습니다.
그 당시 저희들이 많이 들었던 얘기가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였잖아요. 사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잊을 거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고, 또 망각이라는 것도 너무 자연스럽잖아요. 그래서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건데, 저는 사람들이 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언젠가는 잊게 될 거고.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잘 잊을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우리 개개인이 그 사건의 세세한 부분은 잊어버리겠지만 그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게 사회적인 기억이 시스템 내지는 법이나 제도로 확고하게 인식한다면 그게 진짜 잊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우리는 결국 잊겠지만 사회적인 기억을 해야 한다는 게 그 영화의 주제였죠. 그런 식으로 순간적으로 반응하며 온 것 같아요.
Q. 최근에 〈경기상상캠퍼스〉에서 상영하셨던 영화 〈내 사랑의 생태계〉를 흥미롭게 봤습니다. 촬영에 사용했던 의상이나 소품들을 연말에 판매하는 등 지속 가능한 영화 산업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셨다고 느꼈습니다. 가장 최근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내 사랑의 생태계〉라는 프로젝트는 ‘지속 가능한 영화’가 키워드였고, 2019년도쯤에 떠올렸던 아이디어인데 이제서야 겨우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에게는 ‘지속 가능성’이 정말 중요한 키워드예요. 팀원들끼리도 항상 하는 이야기고, 저희에게 항상 갈증으로 남아있습니다. 저희는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고 영화로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사실 영화라는 게 상업성을 가지는 것이 굉장히 어려워요. 저희가 만드는 영화의 경우에는 더 그래요. 그러다 보니까 한 편, 한 편이 정말 힘듭니다. 영화를 만들고, 그 다음에 어찌어찌 제작비를 마련해서 또 만들고, 그걸 가지고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알리는 그 모든 과정들이 다 비용이고 하나가 끝나면 다시 제로에서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과연 어떻게 작업을, 창작 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지 항상 갈증을 느끼는 거죠.
그런 사람들이 팀으로 뭉치게 됐어요. 우리의 창작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무언가를 함께 찾아보자 해서 모인 거죠. ‘지속 가능성’이라는 키워드를 항상 품고 있었는데 이게 환경 쪽으로 확산이 됐다고 할까요. 저희는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 경제적인 문제도 포함해서 여러 조건이 필요하잖아요. 그중에 ‘돌아보니까 지구가 이러다가는 망가질 수도 있대, 그러면 우리가 영화를 못 찍을 수도 있겠는데?’ 이렇게 생각이 발전한 거예요. 결국 환경을 생각하는 뜻깊은 마음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우리가 좋아하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창작 환경도 좋아져야만 우리도 그 안에서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이기심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산업이 환경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볼까요? 실제 연구에 의하면 할리우드 영상 산업이 배출하는 탄소 배출량은 오일 산업에 이어서 두 번째로 많습니다. 사람들은 세련되고 모던한 결과물을 보잖아요. 그런데 그 뒤에서 벌어지는 제작 과정들은 3D 산업에 가까운 영화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위해 어마어마한 탄소를 배출하거나, 환경을 파괴하죠. 또 장면을 위한다는 이유로 생태 환경을 쉽게 훼손하는 경우도 있어요. 예를 들어서 영화 〈봉오동 전투〉를 촬영할 때 동강 유역의 할미꽃 서식지를 훼손해서 문제가 된 부분이 있잖아요. 이렇게 문제가 됐다는 것 자체도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는 거죠. 옛날에는 별일이 아니었던 것. 그런 것들을 알게 됐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사랑의 생태계〉는 우리가 이 산업의 전반적인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작업을 하면서 이런 문제들을 생각해 볼 여지를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는 없을까?’라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는 단편을 하나 제작하는 동안에 탄소가 얼마나 배출되는지 꼼꼼히 조사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오디션을 볼 때 배우들이 차를 끌고 오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어디서 얼만큼의 거리를 와서 탄소가 얼마큼 배출되는지. 그리고 저희가 촬영 장소에서 이동할 때 탄소가 얼마큼 배출되고, 장비를 사용하면서 에너지가 얼마나 쓰였는지 이런 것들을 다 조사했죠. 물론 저희가 전문가는 아니다보니 완벽하게 조사할 수는 없었지만요.
사실 유럽에서는 90년대 중반부터 이미 환경과 관련된 대응이 국가나 예술재단 내지는 시민단체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매뉴얼이나 영화를 제작하면서 배출되는 탄소를 계산할 수 있는 수식이라든지 이런 게 다 있거든요. 저희는 그것들을 가지고 와서 그냥 시도한거죠. 그리고 사실 의상이나 소품들은 보통 영화가 끝나면 쓰레기가 되어 버리거든요. 그중에서 팔 수 있는 것들은 팔고, 파는 과정 속에서도 우리가 영화 산업이 이런 문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잖아요. 그렇게 기획을 한 거죠.
영화 중간에 연극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제가 담고자 했던 이야기예요. 연극 장면에서 두 주인공이 있고 그중 한 명은 좀 특이한 신체를 가졌습니다. 몸이 투명해져서 완전 투명 인간이 됐다가, 불투명해져서 다시 저희처럼 보고 만질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을 주기적으로 반복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의 연인, 이 둘의 이야기입니다.
투명과 불투명을 반복하는 이 사람은 어느 순간 ‘자기는 그전까지 투명해져서 사라지면 의식도 없었는데 지난번에는 좀 달랐다’고 말합니다. 지난번에는 의식이 있었고 그때 살아있는 존재에 들어가서 그들이 보고 느낀 대로 똑같이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경험이 너무 좋아서 다음에 투명해질 때는 내가 보고 느낄 수 있는 한 다 보고 느끼고 다시 돌아오고 싶다 말하며 이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말씀드렸던 생태 감수성을 표현하려는 장면이었습니다.
우리가 환경을 생각한다고 하지만 사실 내 몸이 귀찮고 힘들면 분리수거도 힘들죠. 그냥 잠깐 눈 감고 버리면 너무 편하잖아요.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떤 관념적인 의지나 도덕이 아니라, 쟤네들도 살아있고 뭔가를 보고 느끼고 있다는 것을 정말로 저희가 느낄 수 있다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관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캐릭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정말 관념이 아니라 이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면, 우리들 모두 그런 느낌을 조금이라도 더 가질 수 있다면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담겨 있는 작품인 거죠. 대사에도 그런 생각이 담긴 거고.
Q. 주변에 환경과 기후위기에 관심이 있어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어떤 거창한 동기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오랫동안 하기 위해서 고민하다 자연스럽게 ‘어떻게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지’라는 고민으로 이어졌다고 말씀들 하십니다. 저는 이것을 ‘생태적 감수성’이라고 표현하는데요. 그런 것들을 대표님의 작품에서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정말로 사랑하는 게 한 가지씩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게 영화인 거죠. 그래서 사랑하는 것을 계속 하고 싶어서 지구도 멀쩡했으면 좋겠다는 이기심으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욕망을 관념과 도덕으로 포장 하면 오래 못 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영화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그 안에서 식물이나 동물처럼 목소리가 없는 존재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내 사랑의 생태계〉에서 연극으로 표현된 이야기를 따로 떼서 더 길게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환경 이슈의 당사자인 자연 속 작은 존재들의 입장을 담아내는 영화인거죠.
Q. 말씀하시는 것들이 결국 ‘욕구에 의한 것들’로부터 시작합니다. 앞에서는 세월호 관련 작품을 준비하실 때 ‘죄책감’부터 시작했다는 답변을 주셨죠. 작품과 자신에게 솔직하려고 많이 노력하시고, 어떻게 하면 솔직함을 영화라는 수단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하시는 것 같습니다. 대표님의 표현 방식에 크게 영감을 주었거나 멘토로 삼으시는 분이 있나요?
좋아하는 작품들도 진짜 많고, 좋아하는 감독들도 많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가 항상 떠오르는 분은 ‘백남준’입니다. 그 분을 항상 떠올리는 이유는 확고한 자기 형식이 있는 게 너무 멋있어서에요. 사실 영화는 이미 준비된 도구들을 가지고 만드는 거잖아요. 백남준이라는 사람은 도구부터 만드는 사람 같아서 남다르게 보고 있죠. 그래서 저 사람의 발끝이라도 따라가 볼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영화는 너무 많아요.
영화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감독은 ‘장 뤽 고다르’나 아니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같은 감독일 겁니다. 국내 감독 중에는 ‘홍상수’ 감독을 제일 좋아해요. 작품에서 솔직하고, 항상 자기 이야기를 하고, 매번 그전보다 달라지는 모습을 항상 보여주시는 게 좋아요.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항상 다른 거죠.
제가 개인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로 출발한다고 하셨는데 그래서 제가 홍상수 감독을 좋아하고 태도를 닮으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사실 진짜 졸리고 재미는 없거든요. 그 사람 영화를 보면 바람이나 불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생각 해요. 저 사람은 뭔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다르다. 그래서 볼 때마다 좀 새롭고 그래서 습관적으로 보는 영화에요. 고다르 같은 분은 워낙 영화의 형식 자체를 완전히 혁명적으로 바꾸신 분이다 보니 백남준을 제가 존경하듯이 고다르도 존경을 하는 게 아닐까요. 얼마 전에 돌아가셨거든요. 마지막에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선택하셨죠. 그래서 이분 정말 대단하시다, 마지막까지 정말 자기 선택으로 가시는구나 싶었어요. 대단히 존경하는 감독이자 닮고 싶은 부분이 있는 감독님들이십니다.
Q. 2016년 인터뷰 내용 중에서 ‘관객들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 아무 질문이 없었다’라는 질문에 “아마 불친절한 영화였을 거다. 많은 것들을 설명 대신에 사운드와 이미지 속에 감춰두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영화가 한 번에 손쉽게 이해되고 잊혀지는 것보다는 처음에 어렵더라도 자꾸만 숨은 의미들을 고민하도록 만들고 싶었다.”라고 답하셨습니다. 쉽게 이해되는 직관적인 것들과 상반되는, 함축적으로 전달하고 관객들이 고민하게끔 만드는 화법을 고수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영화를 만들면서 항상 고민하는 건 ‘관객들이 들어오는 입구를 어디에 만들어야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게 정말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관객들이 들어올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고, 점차 친절해지고 있다고도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시적인 표현을 더 선호해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어려워 하시는 것 같습니다. 너무 직접적인 표현보다 시적인 것들을 시적인 방식으로 에둘러서 표현하려는 개인적인 목표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아요. 반면에 영화는 이야기니까 그 부분은 재미있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영화에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능적인 부분과, 동시에 어떤 의미나 정서를 전달하는 기능적이지 않은 두 가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중에서 기능적인 부분에 더 고민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전에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들만 상대해도 됐다면, 요즘은 더 많은 콘텐츠 소비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소비자들은 항상 구매한 상품이 자신을 만족시키기를 원하죠. 그들이 만족하는 동시에 영화를 감상의 대상으로, 어떤 작품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싶다는 모순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도망치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이번 영화는 전시회 형태로 한번 풀어봤잖아요. 그런데 재밌는 것이 첫 전시 때 편집 실수로 여배우가 독백을 하고 카메라를 쳐다보는 마지막 장면에 ‘컷’하는 소리가 그냥 들어가 버렸어요. 그런데 아무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을 하는 거예요. 전시장이라는 공간 내에서 내 영화가 틀어질 때 상영될 때, 영화를 작품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시려고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내 영화는 전시장에 어울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떤 영화든 자기를 받아들여 줄 관객을 찾아야 하는데. 내 영화를 감상해 줄 사람들은 영화관이 아니라 전시장에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 거죠. 내년에는 전시 형태로 많이 풀어볼까를 고려 중인 도망치고 싶은 생각도 마음 한편에 있어요. 반면에 영화관이라는 장소는… 뭐랄까 전쟁터나 야생에 가깝다고 할까요? 그런 곳에서 소비자분들을 감상자로 만들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있는 거죠. 사실 고민이 많아요. 균형을 찾는 게 정말 어려운 일 같아요.
백남준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심오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 유쾌하고 쉬워서입니다. 백남준 작품을 보면 아이들도 정말 좋아하죠? TV 마이크 같은 것을 보면 아이들이 마이크 하나 가지고 재밌게 놀기도 합니다. 저렇게 유쾌하고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는데 파고들기 시작하면 정말 심오한 것들이 있잖아요. 저는 아직 저렇게는 못할 것 같아요. 그런 것은 도대체 어떤 경지인 걸까요. 제 영화가 어렵다고 하시면 아직 저 경지에 이르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동시에 그냥 내 식대로 하면서 전시장에서만 트는 건 어떤가 이런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Q. 영화라는 장르 속에서 작가의 예술성을 드러낼 수 있는 영화가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건강하게 살아남으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일단 그걸 봐줄 사람들이 있어야 하겠죠. 그런 분들이 있어야 돈이 될 테니까. 그리고 돈이 되어야 또 영화를 찍을 수 있을 테니까요. 전시장을 고민하는 것도 도망치고 싶어서라고 농담처럼 이야기 했지만, 거기 담긴 고민은 ‘내 영화를 돈을 내고 와서 봐주는 사람들이 어디 있나’에 대한 고민입니다. 결국은 돌고 돌아서, 돈을 내고 봐주는 사람들이 10명, 100명으로 시작해서 나중에 1만 명이 되고 10만 명이 되면 그걸 가지고 또 다음 영화를 만들 수가 있잖아요. 그런 관객들을 만나는 게 제일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관객들을 만나고 싶고, 항상 고민합니다. 가장 큰 고민이 사실 그런 것 같아요. 작품에 대한 고민을 빼면 ‘이걸 봐주는 사람들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인 거죠.
‘영화’로 시작해서 ‘생계’로 이어지는 대화의 흐름은, 아이였던 우리가 어른이 되어 서서히 꿈을 잃어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돈이나 생계와 연결된 이야기가 자칫 불편한 대화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순서로 대화를 나누고자 했던 이유는 분명했다. 우리가 꿈을 잃어가는 과정은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Q. 2018년 대표님의 인터뷰 중에서 ‘밥은 먹고 다니시는지’라는 질문에 “굶고 살진 않았지만 이젠 (경제적) 독립을 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굶지 않을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가 아니겠는가?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비용을 지금 영화로 벌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답하셨습니다. 찾아본 바에 의하면 2020년에 〈오브아웃사이더스〉라는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더라고요. 우리나라의 기차들을 모티브로 필름카메라를 디자인해서 크라우드 펀딩을 기획하셨는데요. 상품을 지역 사진관과 협력해서 진행한다는 아이디어도 좋았고 심지어 예쁘기까지 했어요. 〈오브아웃사이더스〉가 대표님에게는 생계를 위한 일종의 실험이었을텐데요. 어떤 결과를 냈는지 궁금합니다.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아주 큰 도움은 아닌 정도입니다. 생계를 위해서 시작한 건데, 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돈 버는 데는 별로 재능이 없는 것 같다’로 끝나곤 했죠. 예를 들어서, 정말 돈을 벌 작정이면 아예 작정을 하고 해야 하는데, 계속 이렇게 하면 좀 더 예쁠 것 같고, 이렇게 하면 좀 더 이야기가 담길 것 같다라며 고민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계속 에너지가 들고, 소모하는 에너지와 비교하면 수익이 그만큼 나지는 않다보니 고민이 많아요. 그래서 말씀하신 그 프로젝트를 계속 해야 할지 아니면 전환해서 정말 돈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그걸 가지고 이 작업들을 이어나가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이죠.
Q. 〈오브아웃사이더스〉 프로젝트로 새롭게 깨닫게 된 점이 있었나요? 수익 활동에 관한 다른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너무 오만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 돈을 벌 생각이면 정말 확실하게 다 내려놓고 돈을 벌 뭔가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들을 쥔 채로 하거나, 최대한 조금만 내려놓고 돈을 벌 수 있는 걸 하니까 불협화음이 생겼습니다. 나의 목적과 태도가 안 맞는 거죠.
예를 들어서 저희는 카메라를 가지고 거기에 스토리나 로컬적인 콘텐츠를 입혔습니다. 패키지도 따로 디자인해서 직접 입히고요. 하지만 결국 소비자가 봤을 때는 똑같은 기능을 가진 일회용 필름 카메라잖아요. 저희는 일회용 카메라 제조 공장을 다 알아보고 다녔기 때문에 그걸 떼와가지고서 어느 정도 가격에 팔면 얼마를 남겨 먹겠구나 라는 게 대강 보여요. 심지어 공장에서 나오는 오만 가지 디자인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공장 OEM 넣어서 그냥 우리 거, 예를 들어서 ‘삼다수 스티커 붙여주세요’ 하면 공장에서 그 작업까지 끝내서 옵니다. 그럼 바로 팔 수 있죠. 누가 봐도 저희가 하고 있는 작업들과 비교하면 그 편이 드는 수고도 적고 수익률이 훨씬 앞서는 거에요.
다시 말해, 일회용 필름 카메라라는 품목을 가지고 돈을 벌 생각이면 그런 식으로 해야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거죠.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인데 내 태도는 돈을 벌 태도가 아닌 거예요. 그러면 자연스레 태도를 버리고 저들처럼 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면 앞으로의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는 거지? 그냥 유통업자가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겠죠. 또 ‘내가 태도와 행동을 잘 바꿀수 있을까?’도 고민할 겁니다. 해보진 않았지만 짐작컨데 어려울 것 같고, 그런 와중에 제작 지원을 받아서 영화를 찍으면 너무 재미있고 희열이 있는 거죠.
지금은 내가 가진 이 예민한 태도를 버리거나 돈을 벌기 위해 작정하지 못 한다면, 차라리 ‘내가 영화(영화는 결국 영상이 될 수도 있고)나 디자인 작업을 하며 이 영역 안에서 좀 더 움직이는 것이 낫지 않나’ 생각 하고 있어요. 사실 답을 찾아가는 중이고 한편으로는 그냥 버티는 중인 것 같아요. 결국 제가 하고 싶은 건 사람들에게 ‘허성완이 이런 영화를 만드는구나, 영화 좋네. 너 다음에도 영화 계속 해 봐.’ 이렇게 되는 데까지 이루고 싶은 거잖아요. 이루기 위해서는 제가 살아남아야 되고, 그냥 계속 버티는 과정인거죠.
제가 어떤 경제적인 성공을 이룰만큼 이재가 뛰어난 사람도 아니어서, 결국 돌고 돌아서 저는 그냥 영화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또 시도하는 중입니다. 항상 영화 한 편이 끝나면 제작 지원금을 1000만 원 받아도 제 돈 700만 원을 쓰거든요. 그럼 또 다시 ’카메라를 떼다 파는 유통업자가 되어야 하나‘ 그런 생각 하게 되고.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거죠. 그렇지만 결국 항상 마음을 따르고 있긴 해요. 영화를 찍으면 너무 재밌어서.
Q. 계속 버티는 과정 중에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을 텐데요. 계속 돈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돈이라는 개념은 제외하고, 나를 버티게 해주는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저는 정말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한 영화가 끝나면 저에게 남는 건 빚이지만, 다음에 찍을 영화를 생각하는 게 재미있습니다. 또 저는 다행스럽게도 포기하고 싶었던 때가 없었어요. 왜냐면 저는 영화를 너무 자연스러운 일처럼 그냥 하고 있거든요. 막무가내로 시작할 수 있던 것도 ‘내가 이걸 이렇게 해서 해야지’라는 생각이 아니라 자연스러웠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보니 영화를 만들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었고, 포기라는 선택도 아예 없었어요.
영화를 만드는 매 순간 정말 힘들고 고민도 하지만,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재미’인 것 같아요. 이번에 부안 새만금 벌판에서 촬영했는데 정말, 정말 힘들었어요. 돌아보면 너무 많은 일이 있었거든요. 정말 많은 일이 두세 달 사이에 찾아와서 ‘이걸 어떻게 했지’, ‘이걸 왜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끝나고 편집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하는 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저는 또 다음 것을 생각하고 있는 거죠. 힘든데도 그냥 진짜 재미있어서 하는 것 같아요. 별거 없습니다.
Q. 수원이라는 지역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 갖추어졌으면 하는 조건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일단 수원문화재단의 사업을 몇 개를 해보고 아직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다는 느낌을 조금 받았습니다. 또 사업을 진행하며 증빙에 많은 시간을 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후자는 행정적인 부분이니까 잘 모르겠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좀 더 깊어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큰 예산을 사용한 지원 사업이 있으면 어떨까요. 문화재단에서 사용하는 예산이 정말 적더라고요. 적은 예산이라도 많은 분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방향도 물론 좋겠지만, 사실 200, ∼∼300만 원 가지고 좋은 영화를 찍기는 어렵거든요. 최대한 많은 분들께 적은 금액을 드리는 것에도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 더 큰 예산을 엄선한 분들에게 드리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그렇게 양질의 작품들이 수원을 기반으로 나오면 좋지 않을까요?
저는 처음부터 그냥 무작정 시작했고, 무대포로 해쳐나왔기 때문에 지금도 배워가는 중입니다. 제가 하는 고민들은 관련 전공을 하지 않았고, 이 업계에서 들어가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고민과 생각일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경기 상상캠퍼스’가 저한테는 큰 도움을 줬습니다. 그 공간에서 다양한 창작자와 영화인들을 만나면서 ‘수원에서 영화를 하는 사람이 나만 있는 건 아니구나’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과 계속 작업을 하면서 지금은 연출자 뿐만 아니라 배우 분들도 점점 생기고 있고, 저희끼리 일종의 조합 같은 걸 만들었어요. 지역에 등록하고 이런 건 아닌데 이름과 짜임새를 만들었죠. 그래서 내년 1월에 우리가 작품을 다 모아서 상영회를 한번 해보자. 그러고 있습니다. 함께 작업하면서 해나갈 여건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에요. 이 프로젝트의 취지처럼 수원 안에서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 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조금 더 알 수 있다면, 그리고 그들 사이를 연결해 줄 수 있는 자리들이 더 많이 생겨난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Q. 수원의 문화예술 단체를 위해 어떤 지원사업이나 행정적 지원이 필요할까요?
영화에만 한정한다면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하는 지원 사업이 제일 좋습니다. 왜냐하면 1,000만 원이면 1,000만 원을 주고 알아서 쓰게 해요. 그런데 재단 지원 사업을 보면 일단 예산서를 짜고, 그 예산에 맞게 써야 하고, 그거에 조금 어긋나면 항목을 바꿔야 합니다. 다른 예술 장르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영화는 시시각각 변하고 현금을 써야 하는 일이 정말 잦거든요. 그런 것에 매 순간 대응하기가 사실 힘들더라고요. 어떤 지원 사업은 제작비라는 형태로 총액을 지원해주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습니다. 물론 영화를 만드는 데 써야 하지만요. 그것처럼 쓰고 나중에 증빙할 수 있게 해주는 지원 사업이 있으면 어떨까 합니다. 증빙을 하다 보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는 알겠는데 나를 못 믿나, 자존심이 상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고, 답답함 같은 게 항상 있죠.
Q. 〈경기상상캠퍼스〉의 그루버 활동이 곧 종료됩니다. ‘상캠’이라는 공간과 동료 그루버들이 대표님에게 큰 힘이 되어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익숙한 공간을 뒤로 하고 새로운 출발을 앞둔 현재, 대표님의 다음 발걸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조합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 같아요. 상캠을 나오면서 공간도 같이 찾아서 작업실 비용을 다른 팀과 함께 부담하려 합니다. 운영과 작업을 같이 할 것 같고요. 수원 안에서 작업하는 창작자분들과 계속 교류하면서 이 안에서 작업물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바라보는 방향은 지역 안에서 작업을 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꾸준히 관객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서 상반기에 한 번, 하반기에 한 번 정기적으로 만나는 게 저희 목표예요. 각 팀이 영화 한 편씩 이 지역 안에서 지역 자원을 활용해서 제작하는 거죠. 그 영화를 상반기에 결산식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하반기에도 이런 것을 한다고 홍보하고 실행해서 몇 년간 이어나가 보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영화는 결국 온라인에 업로드 되면, 누구나 어디에 있든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물리적인 제약에 강하게 묶여 있는 장르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영화를 만드는 것도 물리적인 공간, 사람들, 장비가 있어야 제작할 수 있고. 그렇다면 내가 지금 살고있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수원이라는 공간에서 영화도 조금 더 만들고, 관객들과 실제로 만날 기회를 만들어내면 어떨까요. 그게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큰 자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원이 그러기에 적합한 규모의 도시라는 생각도 듭니다. 인적 구성도 젊은 도시고, 인구도 많고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수원을 활용해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Q. 영화를 소리와 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그 안에 다양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장르를 하고 계시는데요. 앞으로 진행할 작업들을 통해 특별히 어떤 것들을 기록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일단 일차로는 그 순간에 제가 가진 생각을 기록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면 나중에 봤을 때 내가 여기서 이만큼 생각이 달라졌구나를 알 수 있는 매개체가 될 것 같아요.
Q. 〈소요필름〉 허성완 감독님의 작품을 감상할 미래의 관객들에게 미리 한 마디 전해주신다면?
제 영화를 봐주시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하고. 이 영화를 보고 끝이 아니라 다음 영화를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다음 영화가 기대되는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장르와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의 분야에 애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동질감과 존경심이 느껴진다. 〈낯설여관〉과 〈소요필름〉,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꿈을 이루는 과정에 언제나 ‘재미’가 함께하기를, 그의 ‘지속 가능한 사랑’이 평생에 걸쳐 결실을 얻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니까.
2022, <수상한 만남> vol. 1, 170-191p.